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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초엔 표정에 변화가 없었고, 의자에 앉으라고 하면 바닥에 앉고 뱅글뱅글 돌았다. 한 아이로 인해 나의 하루하루는 고민의 연속이었고 내 한계를 확인하는 날이 많았다.
과학실험도, 자리 바꾸기도 소용없었다
항상 표정이 뚱하고, 의자에 앉으라고 하면 바닥에 앉고, 반 이야기가 시작되면 뱅글뱅글 우리 주위를 돌았다.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어봤고, 재미가 없냐고 물어봤고, 자리가 불편하냐고 물어봤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바꿔봤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활동들, 과학실험, 실외놀이, 요리 수업을 준비했고, 의자 자리였던 아이를 바닥 자리로 바꿔주었다. 화장실이 급한가 해서 가고 싶으면 다녀오라고 했고, 물이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오라고도 했다. 아이는 여전했고, 점차 다른 아이들 활동에 영향이 가면서 교실이 소란해지는 날도 생겼다. 바뀐 것이 없었다. 결국 그 아이의 어머님께 전화를 드리게 됐다.
수화기 너머 "네~"라는 대답뿐이었던 어머님
전화를 드리기 전, 아이의 원 생활 이야기를 듣고 너무 속상해하실까 봐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어머님의 반응은 의외였다.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네~"라는 대답뿐이었고, 마지막까지도 "네~"라고 대답하며 끊으셨다. 통화를 마친 후 허무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왜 이렇게 무심하실 수 있을까 싶었다. 내 아이에 대해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면 나는 절대 이렇게 전화를 받지 않았을 텐데. 동시에 아이가 안쓰러웠다. 내가 뭘 도와줄 수 있을까, 앞으로 이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 후 아이에게 자주 다가가 말을 걸었다. "뭐 해?", "뭐 보고 있어?", "무슨 놀이해?", "오늘은 OO랑 놀고 있구나." 하지만 평소와 다른 내 모습이 낯설었는지 아이는 나를 피해 도망 다녔다.
그래도 다가갔더니, 2학기 초 모든 게 바뀌었다
그래도 갔다. 아이가 혼자 있을 땐 더 다가갔다. 우리 반이고 내가 맡은 아이니 내가 더 안아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나중엔 말도 걸고 안아주기도 했다. 아이 표정은 점점 밝아졌고 나중엔 나와 눈도 마주쳤다. 내 말에 대답도 했고, 그 후에는 내 표정을 살피며 마주 보고 같이 웃기도 했다. 그리고 변화가 생겼다. 반 친구들과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눴고 같이 노래도 불렀다. 우리 주위를 뱅글뱅글 돌던 모습이 없어졌다. 달라진 모습을 아이 본인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하나씩 이야기하며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님, 우리 OO가 많이 달라졌어요." 어머님도 그제야 웃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감사하다고.
그 "네~"를 지금 다시 생각하면
그 웃음소리를 듣고 나서야 생각이 미쳤다. 어머님의 그 "네~"는 무심함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아이의 부모는 기관을 옮길 때마다, 학기가 바뀔 때마다 비슷한 전화를 받는다.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이라고 나 스스로 느꼈으면서, 그게 무슨 뜻인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무심한 게 아니라 같은 이야기를 너무 여러 번 들어서 지쳐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마지막 전화에서의 그 웃음이 다르게 들린다. 처음으로 다른 이야기를 들은 날이었을 테니까.
아이는 사랑을 주는 만큼 변한다. 어떤 아이든 미운 아이는 없고, 문제인 아이도 없다. 아이에게 사랑을 준다면 그 아이 본연의 사랑스러움이 드러난다고 나는 믿는다. 다만 하나는 덧붙이고 싶다. 비슷한 모습이 지속된다면 발달 선별검사를 함께 확인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사랑과 검사는 배타적인 게 아니다. 둘 다 아이를 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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