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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수가 낮으면 "응" 한 마디. 가끔은 눈도 안 마주친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하... 또 그러는구나... 기분이 또 안 좋으신가? 어린이집 교사의 일상에는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원장님과 교사 간의 갈등,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있다. 아이들 뒤에서 벌어지는 어른들의 세계,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엄마들 댓글이 곧 교사의 점수였다

    각 반마다 아이들과 하는 활동, 교육들이 있다. 같은 어린이집이라도 반마다 활동이 다르니 그 활동에 대한 엄마들의 반응도 반마다 다르다. 문제는 그 반응, 그러니까 엄마들의 댓글로 원장님이 선생님들의 점수를 매긴다는 거다. 점수가 높으면 어떻게 되냐면, 예쁨이다. 더 예뻐해 주고 특별히 더 신경 써주고, 간식이나 먹을 것들이 있으면 하나라도 더 챙겨준다. 회의 시간에는 대놓고 "OO반 선생님이 이번에 OOO활동을 했는데 반응이 좋더라" 하면서 선생님들 앞에서 칭찬을 해준다. 인사할 때, 말할 때의 온도도 바뀐다. 반대로 점수가 낮으면? 말투부터 달라진다. "응" 하고 끝. 가끔 눈도 안 마주친다ㅋㅋㅋㅋ 그때마다 기분이 어땠냐면, 하... 또 그러시는구나... 싶다. 그 온도만 봐도 오늘 우리 반 댓글 반응이 어땠는지 짐작이 갔다는 거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라고 준비한 활동인데, 어느 순간 원장님께 잘 보이기 위한 점수판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보다 엄마들의 댓글 반응이 먼저가 되는 순간, 그건 교육이 아니라 평가다.

    하루 만에 바뀌는 태도, 그리고 고자질

    그 태도는 고정도 아니다. 왔다 갔다 하신다. 좋았다가 나빠지는 게 얼마 만에 바뀌냐고 물으면, 정해진 게 없다. 다른 교사 활동에 대한 엄마들의 반응도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누가 가서 다른 선생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말씀드릴 때 바뀌기도 한다. 그렇다, 고자질이다. 교사가 원장님한테 가서 말씀드리는 거다. 예쁨 받으려고. 누가 이랬더라 저랬더라 하는 것부터, "OOO 하기 싫다던데요?" 같은 교사들의 투정까지도 전부 원장님 귀에 들어간다. 그 한 마디에 원장님의 온도가 하루 만에 바뀐다. 어제까지 웃으며 인사하던 분이 오늘은 "응" 한 마디로 끝낸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누군가 원장실에 다녀갔다는 것뿐이다. 진짜 사회생활은 다 똑같나 보다. 아이들을 돌보는 곳이라고 해서 어른들의 세계가 다를 건 없었다. 오히려 좁은 공간에서 매일 같은 얼굴을 보는 사이라 회사보다 더 촘촘하게 느껴졌다. 교실에서는 아이들에게 사이좋게 지내라고 가르치면서, 교무실에서는 어른들이 서로를 팔아 점수를 쌓고 있었다.

    고자질 안 했더니 관찰 대상이 됐다

    나는 무시했다. 내 일만 잘하면 되니까. 그러면서까지 예쁨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게 쉬웠냐고 물으면, 아니, 쉽지는 않았다.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지니까. 제일 따가웠던 건 그냥 애들이랑 있을 때였다. 계속 관찰하신다. 내가 어떤지, 관찰 대상으로 들어가는 거다. 고자질로 점수를 쌓지 않으니 나를 지켜보는 방법밖에 없으셨나 보다. 관찰당하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냥 있었다. 내가 뭘 또 잘못해서 그런가 보다 그러고 마는 거다. 그 시선 속에서도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활동을 준비하고, 내 반 아이들의 하루를 챙겼다. 등 뒤의 시선은 내가 어쩔 수 없지만, 내 앞의 아이들은 내가 어쩔 수 있는 부분이니까. 점수판 위에서가 아니라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알게 됐다. 원장님의 예쁨은 내가 만들 수 없지만, 아이들의 하루는 내가 만들 수 있다는 걸. 실제로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반 엄마들의 댓글도, 나를 향한 원장님의 온도도 조금씩 올라갔다.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를 찾은 셈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같은 방식을 택한다. 고자질로 얻는 예쁨은 다른 고자질 한 번에 사라지지만, 내 일로 쌓은 시간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원장님의 온도는 오늘도 바뀌겠지만,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온도는 바뀌지 않는 것. 그게 내가 그 보이지 않는 신경전 속에서 끝까지 지켜낸 한 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