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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일하면서 알림장을 수백 개 썼다. 그리고 이제는 매일 딸의 알림장을 받는 입장이 됐다. 오늘은 알림장을 써본 사람이 알림장을 읽는 방법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알림장에서 아이가 그려지는 순간
우리 딸은 요즘 색에 관심이 많다. 다만 모든 색은 아니고, 신호등의 빨간색과 초록색,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바나나의 노란색 위주다. 그런데 어느 날 알림장에 파란색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집에서 지켜보던 내 생각과 정확히 같았다. 매일 보는 엄마와 같은 지점을 짚어냈다는 건, 선생님도 그만큼 아이를 가까이서 보고 있다는 뜻이다. 파란색 이야기도 그랬지만, 더 기억에 남는 건 미꾸라지다. 우리 딸은 평소에 움직이는 생물을 무서워한다. 하루는 선생님이 미꾸라지를 직접 가져와 아이들이 관찰할 수 있게 해 주셨는데, 알림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만지기 싫어서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슬며시 뒷걸음을 했다고. 선생님이 써주신 표현 그대로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아이가 엉덩이를 빼고 뒷걸음치는 장면이 그대로 눈에 그려졌다. 내가 그 자리에 없었는데도 본 것 같은 기분. 알림장이 잘 쓰였다는 건 이런 거라고 생각한다.
알림장, 아이 표정과 말 그대로
교사가 알림장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건 표현이다. 한 명 한 명 개인으로 써야 하기 때문에, 그 아이의 표정과 말을 그대로 글로 옮겨야 한다. 나도 그 부분을 엄청 신경 써서 썼기 때문에, 딸의 알림장을 볼 때도 그 부분부터 본다. 써본 입장에서 '잘 써주셨다' 싶은 순간은, 내 딸이 평소 하는 말과 행동이 그대로 글에 표현되었을 때다. 내 딸 반은 아이들이 6명이고, 선생님은 그 여섯 개의 알림장을 매일 쓰신다. 그게 어떤 일인지 나는 안다. 나는 최대 7개까지 써봤는데, 아이들 낮잠 시간 동안 쓰고도 부족해서 퇴근 전까지 붙잡고 있던 날이 많았다. 하나에도 그만큼 손이 가는 일을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해주시는 게, 써본 사람이라서 더 감사하다.
이름이 틀린 알림장을 받아본 적도 있다
물론 늘 감동만 받았던 건 아니다. 아이 이름이 다른 이름으로 온 적도 있고, 개인 알림장에 다른 아이 사진이 온 적도 있다. 이런 알림장을 받아본 부모님들이 꽤 있을 거다. 그리고 대부분 나처럼 따로 말씀은 안 드리고 '많이 바쁘셨나 보다' 하고 넘긴다. 근데 마음 한켠에는 서운함이 남는다. 한 번이면 괜찮은데, 반복되면 속상해진다. 나는 그 서운함이 들 때 내 낮잠 시간을 떠올렸다. 일곱 개를 쓰고도 부족해서 퇴근 전까지 붙잡고 있던 날들. 이름이 틀리고 사진이 바뀌는 건 아이를 안 봐서가 아니라, 여러 개를 한 번에 쓰다가 손이 미끄러진 거라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넘어갈 수 있었다. 다만 부모 입장이 되어 보니 이것도 알겠더라. 사정을 다 알아도 서운한 건 서운하다는 것. 교사일 때는 몰랐던 마음이다.
알림장에서 이걸 보시면 된다
교사였다가 이제 알림장을 받는 입장이 된 사람으로서, 알림장을 읽는 기준을 하나 드리고 싶다. 아이가 실제로 한 말이나 행동이 그대로 적혀 있는지를 보면 된다. "즐겁게 놀았어요"는 어느 아이에게나 쓸 수 있는 문장이지만,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슬며시 뒷걸음을 했어요"는 그 아이를 본 사람만 쓸 수 있는 문장이다. 우리 아이 알림장에 그런 문장이 있다면, 그 선생님은 아이의 말과 행동을 잘 관찰하시고 그걸 그대로 전달하시려고 노력하시는 거다. 지금 우리 딸의 알림장이 그렇다. 사진은 카페에 반 전체가 올라오고 알림장에는 글만 오는데, 글을 먼저 읽고 사진을 보면 사진 속 상황이 너무나 잘 이해가 된다. 글이 먼저 장면을 그려주니까 사진은 확인이 되는 거다. 알림장을 수백 개 써본 내가 봐도, 아이를 제대로 보고 쓰는 알림장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알림장부터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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