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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가 하던 색칠공부 종이를 들고 하원을 하는데 엄마가 그걸 가방에 넣었다. 그러자 아이가 "아 시러!!! 들고 갈거야! 왜 꾸겨!!" 하면서 소리를 냈다. 조금 전까지 엄마를 보고 반가워서 뛰어오던 아이였다. 나는 교사생활을 10년 했다. 오늘은 원에서는 잘 지내다가 부모 얼굴만 보면 무너지는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바르다'는 말은 하루 종일 참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봐온 아이들 중에는 특히 원에서 바른 아이들이 그랬다.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아이들. 하지 말라는 건 절대 안 하는 아이들. 반에 한 명씩은 꼭 있었는데, 그런 아이가 하원할 때 엄마한테 제일 크게 터뜨리더라. 원은 집이 아니다. 교사 한 명이 여러 아이를 보는 공동체라 아이 개개인의 성향을 다 받아줄 수가 없다. 규칙과 약속이 먼저일 수밖에 없다. 아이는 그걸 다 따라야 하니까 자기 본모습보다는 적응한 모습으로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여섯 시간, 여덟 시간을 보내다가 엄마 얼굴을 보는 순간 터뜨리는 거다. 물론 원에서 활발한 아이가 그러기도 하고, 원에서도 집에서도 순한 아이도 있다. 다만 내 눈에 유독 그 대비가 컸던 건 원에서 바른 아이들이었다. 엄마들은 원 생활을 직접 본 적이 없으니까 아이가 원에서 어떤 모습인지 모른다. 그래서 "OO는 참 바르게 지내요"라는 말을 들으면 좋게만 생각하시게 된다. 그 말을 싫어하는 부모는 없잖나. 근데 그 '바르게'라는 게 아이 입장에서는 하루 종일 참는 일이기도 하다. 원에서의 바른 모습과 하원 후의 짜증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로 이어진 이야기다.

    왜 하필 엄마한테만 그럴까

    부모님들께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이 이거다. 밖에서는 멀쩡한데 왜 나한테만 이러냐고.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거냐고. 순서가 반대다. 아이가 참기를 그만두는 지점이 엄마인 거다. 참는다는 건 이 사람 앞에서는 내 모습을 다 보이면 안 된다는 계산이 깔린 행동인데, 그 계산을 안 해도 되는 상대가 엄마라서 거기서 푸는 거다. 아이는 아무한테나 터뜨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하원길 짜증은 양육이 잘못됐다는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10년 동안 그 장면을 수없이 봤는데, 엄마한테 크게 터뜨리는 아이일수록 원에서는 제일 애쓰고 있던 아이였다.

    그때 그 엄마는 "알겠어, 들고 가자"라고 했다

    색칠공부 종이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 엄마는 아이 말을 듣고 "아, 알겠어 들고 가자"라고 하셨다. 짧은 말인데 그 안에 두 가지가 들어 있다. 하나, 아이 요구를 꺾지 않았다. 종이를 안 접는 건 들어줘도 아무 문제가 없는 요구였다. 이런 건 그냥 들어주면 된다. 여기서 "가방에 넣어야 안 잃어버리지"라고 설득하기 시작하면 종이 문제가 아니라 힘겨루기가 된다. 둘, 이유를 인정했다. 하루 종일 공들인 종이였고 그게 접히는 게 싫었던 거다. 어른 눈에 별것 아닌 게 아이한테는 오늘의 전부일 수 있다. 말투가 짜증이었다고 해서 이유가 없었던 게 아니다. 하원 시간에 부모님들은 아이 챙기기 바쁘고, 아이는 반가운 와중에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낸다.

    어디까지가 투정이고 어디부터 봐야 하나

    잠깐의 투정은 넘어가도 된다. 다만 정도가 심하다 싶을 때는 이 네 가지를 보면 될 것 같다. 가라앉는 시간. 요구를 들어주거나 잠깐 두면 10~15분 안에 잦아드는가, 아니면 30분 한 시간씩 이어지는가. 협상이 되는가. "종이 안 접고 들고 가자"처럼 대안을 주면 받아들여지는가. 뭘 줘도 안 되고 요구가 계속 바뀌는가. 하원 시간에만 그런가. 아침에도, 주말에도, 원에서도 같은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면 하원 때문만은 아니다. 몸 상태. 하원 시간은 대개 배고프고 졸린 시간대다. 간식 하나로 정리되는 날이 생각보다 많다. 앞의 두 개가 계속 걸리고 원에서의 모습까지 달라졌다면, 담임교사와 이야기해보시는 게 낫다. 교사는 그 아이의 하루를 부모가 볼 수 없는 각도에서 보고 있다.

    집에 바로 들어가지 말고 10분

    원에서 실외놀이를 다녀온 날과 아닌 날은 오후 교실 분위기가 달랐다. 밖에 나갔다 온 날 아이들이 확실히 덜 부딪쳤다. 그래서 하원 후에도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보다 잠깐이라도 밖에 있다 가시라고 권하고 싶다. 거창할 필요는 없다. 놀이터를 한 바퀴 돌든, 10분이든 15분이든. 아이가 하루 종일 참았던 걸 현관 들어서자마자 다 쏟기 전에 밖에서 조금 덜어내고 들어가는 게 아이한테도 엄마한테도 낫다.